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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에게 부모 자식의 개념이 존재 할까?

권기진 세이프독 반려견 교육센터 기자

입력 2019-07-07 17:3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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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강아지를 입양 해 온 후부터 자신을 강아지의 엄마라고 생각하며 기르는 경우가 많다. 우리 집의 경우만 해도 아내는 강아지뿐만 아니라, 고양이와 대화 할 때에도 자신을 '엄마'로 자칭한다.
많은 사람들이 반려동물을 기르면서 주인과 동물의 관계로 머물지 않고 양부모와 자식의 관계처럼 친밀하게 대하게 되는 데는 사회적인 인식도 역할을 하겠지만, 어린 동물이 인간으로 하여금 보살피지 않으면 안 될 모성애를 자극하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어려서 부터 개와 살아오면서 오랫동안 나를 '아빠'라고 칭해 왔다. 개들이야 그렇게 생각하든 아니든 그냥 내 마음대로 그렇게 생각했다. 
그렇다면, 과연 개들은 자신이 출산한 강아지를 무엇이라 여기며 살아갈까?
우선 태어나 스스로 의식주를 해결 할 수 없는 모든 생명체는 누군가로 부터 생명을 부지하기위해 도움을 받아야 한다. 이 역할을 하는 것은 어미일 가능성이 가장 높다. 모든 동물이 자신이 출산 한 새끼만을 먹여 살린다는 보장은 없다. 뻐꾸기가 자신의 알을 다른 새 둥지에 몰래 가져다 놓고 그 둥지의 새는 뻐꾸기가 자신의 새끼인지 아닌지 알지 못한 채 먹여 살린다. 개도 마찬가지로 자신이 출산하지 않은 새끼를 양육한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다.
강아지의 경우 어미의 젖이 부족하거나 어미에게 문제가 생겼을때에 대리모 역할을 해 줄 개의 젖이나 분변을 몸에 묻혀 원래의 새끼들 사이에 살며시 내려 놓으면 대리모는 자신이 출산한 강아지가 아닐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자신의 냄새가 풍긴다는 이유로 물거나 뿌리치지 않고 먹여 기른다.
동물에게 있어 '모성애'란 무엇일까?
무작정 어린 생명체를 살리고자 하는 본성일까? 아니면, 새끼를 기르는 중이거나 새끼를 기르고 싶은 어미의 본성일까? 사실, 모성애는 여성 또는 암컷에게만 있는 본성은 아니다. 젖먹이 들에게 젖을 먹일 수 있는 것은 암컷동물일 뿐이기에 새끼를 키우는 것이 가능하고 목격되기 쉬운 것이지, 남성이나 수컷들에게도 어린 생명을 보호하고자 하는 습성은 존재한다.
우리가 늘 곁에 두고 많은 시간을 보내는 반려견들이 부모와 형제, 즉 가족을 인지한다면 개들의 세계에서는 아주 불편한 일이 생긴다. 부모와 자식 간의 교미가 일어나는 것과 청소년기에 접어든 새끼가 어미와 먹이 경쟁을 하고, 경우에 따라 점유욕구에 의해 어미를 제압하기도 한다. 물론, 교미 상대 간에도 이러한 것은 예외가 아니다. 개들에게 어미의 역할이 언제까지 유지되는지 생각 해 볼 필요가 있다
어미개는 강아지를 포육하고 기르면서 정상적으로 사회에 진출하도록 하는 선생역할을 한다. 새끼들이 다른 개를 만나고 대할 때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 지를 가르치는 첫 번째 선생인 것이다. 강아지들에게 '으르렁'소리를 처음 들려주는 것도 어미고, 처음 깨물어 주는 것도 어미다. 이 어미의 강아지 훈육이 없다면 새끼들은 낯선 개와 정상적으로 어울리지 못하게 되는데, 처음 만나는 개에게 으르렁거리며 시비를 걸거나 제멋대로 올라타고 장난치려 하거나, 무서워 움츠리고 숨는 것들이 어미에게서 훈육 받지 못한 개들의 전형적 모습이다.
새끼들이 어미의 통제에 따르고 어미에게 조아리며 어미 곁에서 머무는 기간은 그리 길지 않다. 어미와 새끼간 관계는 새끼가 성체로써의 첫 징후인 수태능력을 갖추는 시기까지 유효하다. 이무렵 대부분의 어미는 새끼를 멀리하게 되고 경쟁자 관계로 인정하면서 그 인연을 부모와 자식에서 무리의 구성원 사이로 변경한다. 
더 이상 어미와 자식 관계를 고집 할 필요도 없고, 그렇게 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입양 해 온 강아지가 성장하면 예전의 가정에 데려가 어미와 해후 하도록 해주고 싶어 한다. '얼마나 어미가 보고 싶을까!'하는 인정의 발로이다. 강아지를 어미개에게 데려가면 둘은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는 순간 연신 몸을 흔들고 일어서서 부둥켜 안으려는 것 같은 행동을 과하게 하는데, 이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누구든 어미와 자식이 오랜만에 만나 그동안 못 다했던 정을 반가움으로 한껏 표현된다고 생각 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행동은 어미가 자식이 반갑고 자식이 어미가 반가워서가 아니라, 아주 친밀하게 각인 되어 있는 상대에 대한 유희적 행위이지 부모자식 간 애끓는 마음의 표현은 아니다.
개들의 경우, 어미와 자식의 관계가 정리되는 시점은 대형견의 경우 7,8 개월 무렵 부터이고, 소형견의 경우 5,6개월 무렵이다. 이 무렵이면 새끼들의 덩치는 이미 어미와 비등해져 있고, 생식능력이 거의 갖추어 지기 때문에 어미가 새끼들에게 하는 훈육은 이 무렵에 끝이 나게 된다. 이때부터 어미는 새끼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고, 동등한 성체대 성체의 관계로 대하게 된다. 엄밀히 말하면 어미가 그렇게 대한다기 보다 새끼들이 그렇게 행동한다고 보는 것이 적절 할 수도 있다. 이 시기까지 어미는 새끼들이 온전히 살아 갈수 있도록 처신하는 법을 가르쳐야 하고, 새끼들은 어미를 통해 그것을 배우게 된다. 개들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이 시기까지가 어미와 자식의 관계가 유효하며 더 이상 서로가 그런 관계를 원하지 않게 되어 개들에게 '가족'이라는 개념은 형성되지 않고 '무리'를 형성하거나 무리에 속한 채 삶을 지속해 간다.
사람들은 자신이 반려견의 어미, 엄마가 되고 싶고 무한정 어미로써의 역할을 제공 해 주고 싶어 하지만, 이것은 개들에게 전혀 필요치 않은 사람들만의 자기착각이다. 그 방증으로 개를 기르는 사람이 제 아무리 부모의 역할을 하려고 해도 청소년기가 되는 5~9개월 연령의 개들이 순응 하기는 커녕 자신을 가족의 최 우선순위에 놓고자 애쓰게 되면서 저항하는 모습을 보이게 된다. 이 현상은 단순히 버릇없는 자식이 부모에게 반항하는 행위가 아닌, 한 개체가 다른 개체를 상대로 하는 경쟁 행위이다.
개는 어미와 자식 관계 뿐 아니라, 형제나 자매의 경우에도 이와 같은 형태로 서로를 인식하고 대하게 된다.
개들이 성장함에 따라 어미와 자식, 형제자매의 관계는 지속되지 않을 진데, 어떻게 사람이 개의 부모가 될 수 있겠는가! 물론, 사람들이 자신이 반려견의 '엄마, 아빠'라고 칭하는 것의 의미가 진정한 부모를 뜻하지 않는 것일 수도 있기에 굳이 따질 일은 아니지만, 개들에게 존재하지 않는 부모의 역할을 하기 위해 노력하기보다 개들의 안전하고 평화로운 삶을 만들고 지켜 줄 버팀목으로써의 역할이 더 중요하게 요구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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